종이 냄새 안 나는 ‘무지(無紙)의 시대’  충무로 인쇄소에 잉크가 마르다
종이 냄새 안 나는 ‘무지(無紙)의 시대’  충무로 인쇄소에 잉크가 마르다
  • 김준원·이용현·이수빈 기자
  • 승인 2024.05.09 16:03
  • 호수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중구 ‘충무로 인쇄거리’ 모습. 손님들이 없어 골목길은 늘 한산하다.
서울 중구 ‘충무로 인쇄거리’ 모습. 손님들이 없어 골목길은 늘 한산하다.

Prologue

정녕 종이책의 종말이 왔는가. 디지털 시대에서 비대면 시대로의 전환을 맞으며 종이책의 종말은 먼 미래가 아니게 됐다. 당장 강의실을 돌아봐도 공책과 필기구 대신 전자기기 하나쯤은 필수가 된 시대다. 더 이상 대학가에는 종이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대학가 인쇄소도 학생들의 걸음이 끊긴 지 오래다. 대학의 발전과 함께 해온 인쇄소, 그 역사의 현장으로 향했다. 

 

손에는 종이책 대신 전자기기

수업이 한창인 대학 강의실,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이 필수로 올라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교수님이 온라인 강의실에 올려두신 자료를 전자기기에 저장하고, 액정과 모니터에 자료를 띄우며 수업 준비를 마친다. 수업 시간 전 사물함에서 책을 가져올 필요가 없다. 수업을 듣는 중 의문이 생기면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볼 수도 있다. 이 편리함은 종이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달콤’했다.

 

“사실상 책이 필요 없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곤 해요.” 이태규(영상콘텐츠3)씨는 “태블릿은 마음대로 썼다가 지우고, 아무것도 안 적힌 페이지와 필기한 페이지로 따로 나눌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자기기 하나로 모든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편리함은 대학가 종이의 종말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기자는 일주일간 종이와 필기구로만 수업을 들어봤다. 공책에 필기하는 모습을 본 기자의 동기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의아한 반응과 달리 공책 필기만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다. 종이 특유의 필기감을 통해 필기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수업을 더 집중해서 듣게 됐다. 또 태블릿을 사용할 때보다 눈의 피로도가 낮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사용하던 전자기기 없이 수업을 듣자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수업에 사용되는 30여 장의 자료를 미리 인쇄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웠다. 전공책, 필기도구, 인쇄한 자료를 챙겨야 했기에 가방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빔프로젝터로 띄워진 강의 자료만 보며 수업을 들으니 자료 위에 바로 표시하고 필기할 수가 없었고, 타자에 맞춰져 있던 속도를 손 필기로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전자기기로 진행되는 수업에 종이로 따라가다간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었다.

 

인쇄소에서 잉크 냄새가 안 나요

성유나(국어국문3)씨는 “강의 자료를 매번 종이로 인쇄하기는 아까워서 들고 다니기 편한 태블릿으로 학습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PDF 파일 및 전자책 학습 선호도가 높아진 현재, 대학가 인쇄소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기자는 죽전캠 인근 2곳, 천안캠 인근 1곳의 인쇄소를 방문했다. 죽전캠 인근에 있는 ‘카피프린스’는 우리 대학이 한남동에 위치할 때부터 함께 했다. 1991년 한남캠퍼스 시절 학교 신관 건물 복사실에서 시작해, 학교가 용인으로 이사할 때 함께 소재지를 옮겼다. 오랜 시간 우리 대학과 함께했지만, 인쇄소 내부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이미 끊긴 지 오래돼 보였다. 

 

‘카피프린스’ 사장 김효진 씨는 "현재 학생들은 거의 오지 않는 상태이며, 가끔 교수들이 프로젝트를 할 때나 외부 기업체 그리고 학원과 주로 업무를 한다"며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이용자 수도 줄었고, 학생뿐 아니라 학회, 회사 등 다른 업체와의 거래량도 현저히 줄었다"고 말했다. 

 

‘알파카피’ 역시 한남동 시절부터 함께했던 인쇄소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쇄 업무를 진행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인쇄소이지만,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알파카피’ 인쇄소 역시 처음 용인에 개업했던 당시에는 수많은 학생이 인쇄소를 찾았지만, 현재는 모든 발걸음이 끊긴 상황이다. 

 

‘알파카피’ 사장 A씨는 학생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이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예전에는 디자인 계열 학생들과 특히 각별해서 우리 가게에서 출력해 공모전에 제출하면 다 수상한다며 덕담을 주고받은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천안캠 인근에 있는 ‘국제사’는 30년 넘게 학교 앞에서 인쇄 업무를 했다. 인쇄소 안에 들어가자 특유의 진한 종이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또한 벽장에 빼곡히 정렬된 오래된 서류들은 기자로 하여금 세월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커다란 인쇄용 기계들과 겹겹이 쌓여있는 서류 더미가 보였다. 서류 더미는 학교와는 연관 없는 회사, 사업에 관한 서류였다. 

 

인쇄소를 찾는 이용자 수가 점차 줄어들고, 코로나19를 겪으며 대학가 인쇄소들은 사정이 어려워졌다. 이는 ‘국제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시기 이전에도 인쇄소 이용자 수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코로나 시기가 찾아오면서 감소의 폭이 더 커졌다. 

 

더불어 비대면 강의가 늘어남에 따라 태블릿을 이용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인쇄소를 찾는 학생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국제사’ 사장 고원준 씨는 대학가 인쇄소의 전망에 관해 묻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미 수많은 인쇄소가 문을 닫은 만큼 앞으로 인쇄소들도 결국에는 사라질 것이며, 앞으로 10년 정도 후엔 몇 군데 남지 않고 문을 닫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대를 풍미한 인쇄 역사의 쇠락  

대학을 상대로 한 인쇄소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600년의 활자 인쇄 역사를 지닌 서울 중구 충무로 인쇄 거리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까. 기자는 이 의문을 해결해 줄 충무로 인쇄 골목을 찾았다. 

 

충무로 인쇄 골목은 과거 포스터 제작, 제본, 인쇄 등 다양한 기술들을 보유한 인쇄 기술자들이 모여있는 주요 장소였다. 골목 곳곳에서 잉크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골목에서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인쇄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인쇄 골목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충무로역에서 내려 5분가량 걷다 보니 인쇄소 간판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인쇄 골목이라 부를 만한 인쇄소의 간판이 빼곡히 늘어서 있는 길가에 도착했다.

 

골목의 풍경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소라고는 볼 수 없었다. 골목을 가로지르는 대로에는 인기척이 거의 없었고 인쇄소마다 주인은 있었지만, 활기가 없었다. 마침 내리는 비와 함께 기자가 마주한 골목의 광경은 ‘쇠락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울적한 기분이 드는 풍경이었다.

 

이후 기자는 늘어서 있는 인쇄소 중 한 곳을 들어가 인쇄업의 전망에 관해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인쇄 시대는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다”라는 것이었다. 인쇄를 생업으로 삼아온 기술자의 묵직한 슬픔에 차마 질문을 바로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40년째 인쇄업에 종사해 온 김호춘(63)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충무로 인쇄 골목은 지금의 모습이 마지막 세대”라는 말과 함께 인쇄 시대의 머지않은 종말을 예고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과거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인쇄업에 종사해 온 김 씨의 눈빛에서 시대의 변화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씁쓸함이 엿보이기도 했다.

 

근방에 위치한 다른 인쇄소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33년째 인쇄소를 운영해 온 김영덕(63)씨 역시 “이제는 기존의 거래처에 의존하는 상황이고 그마저도 없어진 인쇄소는 점점 폐업하고 있다”며 “이제는 인쇄 기술과 함께 창업하거나 배우려는 사람이 아예 없기에 지금 보이는 인쇄소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충무로에 위치한 한 인쇄소의 내부 모습.
충무로에 위치한 한 인쇄소의 내부 모습.

Epilogue

‘레거시 미디어’, 웹 기반의 새로운 미디어에 견줘봤을 때 전통적 미디어인 TV, 라디오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인쇄업 또한 머지않은 미래에 ‘레거시’ 화를 앞두고 있다. 이젠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현대인의 필수 덕목이 됐지만, 과거 사물함에 넣어놨던 교과서를 꺼내 연필로 직접 필기하던 사람도 누군가에겐 이전 시대의 선구자였다. 그렇기에 기자는 전한다. 변화에 맞춰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추억을 마음 한구석에라도 간직해보는 것을. 

 

 

김준원·이용현·이수빈 기자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