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꼭 들어야하는 펜촉
누군가는 꼭 들어야하는 펜촉
  • 김예은 기자
  • 승인 2023.12.05 14:55
  • 호수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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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어린 시절 문구점에서 구입 한 나비 거울 하나가 있습니다.” 기자가 단대신문 83기 수습기자 지원서에 쓴 첫 문장이다. 일반 거울보다 오목했던 나비 거울은 모든 상을 원래보다 확대시켜 보여줬고, 기자는 그 거울을 통해 올곧게 자란다고 생각했던 속눈썹이 사실 삐뚤빼뚤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자는 당시 소외된 것들, 혹은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일들을 확대된 시야로 포착하여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기자의 본분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기자의 나비 거울이 세상 밖으로 힘차게 날아가길 바란다는 문장을 작성했었다.


자기소개서를 보고 기자를 뽑아준 윗 기수 선배들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기자는 사실 앞의 문장을 다른 글에서 한 번 더 쓴 적이 있다. 바로 대학 자기소개서에서다. 한 번 뱉으면 허공으로 발화되는 말과 다르게 글은 ‘기록돼 남아있다’라는 점에서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기자는 그런 글이 주는 힘이 좋았다. 그렇기에 글 쓰는 법을 배우는 문예창작과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모든 대학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기자에게 스무 살의 봄은 이미 져 버린 계절이었다. 매일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고 분석문을 작성한 뒤 침대에 누우면 뼈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무게감이 너무나 육중해서 쉽게 일어나기 힘들었다.


기자는 대학 추가 합격 전화를 크리스마스 전날 받았다. 전 년도의 추가 합격자 번호가 6번이었는데, 기자는 9번이었으니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렇게 어렵사리 들어온 학교이기에 기자는 글로서 유의미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게시판에 붙은 단대신문 수습기자 포스터를 발견했고, 집에 귀가하자마자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단대신문 기자로 살아가는 일은 나비가 날아오르는 일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과방에서 불어 터진 컵라면을 먹으며 아이템 준비를 위해 몇 시간씩 머리를 싸매야 했고, 인터뷰 컨택을 위해 주변 지인에 지인까지 연락을 돌리며 한 번만 도와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한여름에 진행된 축제 취재는 기자의 피부색을 두 톤 어둡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공정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들었던 펜촉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항의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거나, 다른 기자가 쓴소리를 들었단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자는 뚜껑을 닫아 펜촉을 숨겨버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앞에서 서술했듯 글이 가진 힘은 기록돼 남아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많은 이들이 읽지 않더라도, 단대신문에 남아있는 기사들은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단대신문은 천 원의 아침밥 신설, 천안캠 셔틀버스 증차 등 우리 대학의 유의미한 변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렇기에 기자는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궂은일을 해도, 무슨 소리를 들어도 기사 쓰는 것은 누군가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그러니 흰 창의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는 단대신문 기자들이여, 쓰는 일을 멈추지 말길 바란다. “그대의 열정을 단국의 역사로”란 말이 괜히 존재하겠는가. 

 

 

김예은 기자 agony5z@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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