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병’이 그렇게 나쁜 거야?
‘홍대병’이 그렇게 나쁜 거야?
  • 『후 이즈 힙스터?』 저자 문희언
  • 승인 2018.04.06 1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힙스터 대백과 3
일러스트 민효인
일러스트 민효인

홍대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홍대병은 종종 등장한다. 만약 잘 모르겠다면 밴드 혁오를 떠올리길 바란다. 혁오는 무한도전(MBC)’에 출연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혁오가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혁오 팬들은 나만 알고 싶은 밴드 혁오가 이제 유명해지겠다며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때 사람들은 그들을 홍대병 환자라고 비웃었다.
 

일반적으로 홍대병은 사춘기 시절 감성을 간직한 채 성인이 돼도 남과 다른 특별한 나를 만들기 위해 대중적인 것을 멀리하고 마이너한 것을 좋아하는 감성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인디밴드 음악을 듣고,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빈티지 옷을 즐겨 입으며, 문학을 사랑하는 것이다. 산업화시대 이전에는 하나의 교양으로 여겨졌던 일들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이제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성인이 돼서도 이런 예술을 즐기는 사람은 한심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홍대병 환자들의 특징을 보니 어쩐지 힙스터와 비슷한 것 같다. 필자는 홍대병 환자는 힙스터를 부르는 또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남과 다른 나를 추구하기에 남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일부러 찾아서 좋아하는 점이 같다. 그래서 홍대 힙스터들은 자신만 알고 좋아하던 혁오가 공중파 방송에 나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힙스터를 홍대병 환자라는 한국화된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홍대에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홍대라는 지명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의 동교동, 서교동을 중심으로 하여 합정동, 상수동, 연남동은 물론 최근에는 망원동과 서대문구의 연희동까지 어우를 정도로 굉장히 광범위해졌다. 홍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에서 미술대학으로 유명한 홍익대학교가 있고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인디밴드의 본거지 역할을 하던 곳이라 미술, 출판, 음악, 건축, 영상 등 예술 창작에 관련된 회사가 많이 있고,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이 거주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인프라가 발달하고, 서로 의견과 생각을 교환하고. 함께 일할 기회도 생기기 마련이다. 홍대라는 지역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술 창작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앞서서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퍼뜨리고 직접 창작도 한다. 누구보다 유행에 민감하고 문화의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남보다 먼저 발견한 좋은 것을 국내에 들여와 소개한다.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제과제빵을 배운 후 디저트 가게를 차리고,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운 후 레스토랑을 차리고, 외국 유명 아트스쿨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디자인 회사를 차리고, 외국에서 공부하며 음반을 내는 등 다양한 분야의 창조적인 젊은이들이 본인의 재능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그들이 가장 많이 모여 활동하는 곳이 바로 홍대이다.
 

최근 힙스터들이 많이 찾는 지역에는 홍대 이외에도 이태원, 성수, 서촌·북촌, 통의동, 익선동, 한남동 등이 있지만 이 지역은 홍대처럼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곳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태원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지만 홍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이태원에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태원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의류 브랜드 건물, 수입 자동차 전시장, 대기업 광고회사 등이 들어서면서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을 위한 가게가 생겨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경리단길과 해방촌 지역 가게들이 젊은이에게 인기를 얻으며 홍대에 버금가는 젊은이가 좋아하는 동네가 되었다.
 

이태원에 자리 잡은 것은 대개 카페, 베이커리, 술집, , 레스토랑 등이다. 대기업이 세운 도서관이나 공연장, 미술관 등도 있으나 대기업 자본으로 만들어진 문화를 즐기는 것은 사실 힙스터가 추구하는 비주류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다른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 음식점이나 카페 등을 중심으로 동네 문화가 형성되어 사람들은 그저 일시적으로 그곳을 방문할 뿐이다.
 

홍대만큼 자율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는 없으며, 홍대는 그들에게 필요한 인프라를 대부분 갖추고 있고, 사람 사귀기에도 좋다(일로든 사적으로든). 그래서 홍대 힙스터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고 점점 홍대의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홍대로 모여들고 실제로 새롭고 좋은 것들을 만들어 다른 젊은이들에게 소개하고 그것을 보고 좋다고 느낀 젊은이가 다시 홍대로 이주하는 방식으로 홍대 문화가 계속 유지되고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홍대 문화가 꼭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홍대에 몰려들자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크게 인상했고,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많은 창작자와 예술가가 홍대에서 밀려났고 그들의 단골 가게도 함께 밀려나 홍대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이전의 낭만적인 대학가 거리가 아닌 소비의 거리가 되었다며 비난의 화살을 홍대를 찾는 젊은이, 즉 힙스터에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홍대에서 창작자를 내쫓은 것이 건물주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고, 홍대의 창작자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여러 분야의 인프라를 포기할 수 없어 홍대 주변에 머무르며 홍대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홍대에 젠트리피케이션을 몰고 온 주범으로 홍대 힙스터를 지목했고, 여러 매체에서는 그들의 주류를 벗어난 모습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 기성세대는 부동산 문제와 소비주의 문화 형성의 책임을 젊은 힙스터에게 전가하면서 그들을 홍대병 환자라는 말로 가둬버렸다. 남과 다른 일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사는 홍대 힙스터를 인정하는 대신 이라는 말을 붙인 기성세대의 저의를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