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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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웅(문예창작·3)
  • 승인 2018.01.19 14:42
  • 호수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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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밤새 캠프파이어를 벌이며 그들의 신을 불렀다

무엇이든 죽기 직전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

집에 갇힌 채 타죽은 가축들처럼

꽃잎들이 발광하듯 활활 타올랐다

나방들은 불속으로 뛰어들었다

한 줌의 재가 되기까지

꽃받침들은 그들의 빛을 잃지 않았고

전설 또한 잊혀지지 않았다

끝없이 타오를 줄 알았던 꽃의 불길은

제 몸을 웅크려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수십개의 화살을 맞고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뿌리

꾹꾹 눌러왔던 울음이

땅 위로 다 닳은 손을 뻗는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자

꽃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달에게 빛을 쏘아 올렸고

꽃이 있던 자리마다

신은 손수 꽃씨를 심었다

마지막이 오면 또 다시 타오를 것이다

신이 달빛을 조금 떼어내어

꽃씨와 함께 묻는다

그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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