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인 캠퍼스 13. 모네 <인상-일출>
캔버스 인 캠퍼스 13. 모네 <인상-일출>
  • 단대신문
  • 승인 2018.01.10 23:00
  • 호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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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채의 감흥으로 진동하는 새벽 항구의 인상

마네와 더불어 인상주의 미술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대상을 직접 마주 대하지 않고는 절대로 화면에 붓을 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모네는 화실에서 나와 야외에서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종래의 화가들은 대부분의 그림을 시작부터 완성까지 화실 내에서만 그렸다. 예외적으로 간단한 스케치는 야외에서 하고 화실에서 본격적으로 그려 그림을 완성시키는 화가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림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야외의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인상파 화가들이 처음 시도한 것이었다. 물론 코로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몇몇 풍경화에서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렇게 인상파 화가들이 야외에서 대상을 직접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눈에 직접적으로 포착된 대상의 시각적 인상을 최대한 충실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데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사물이란 고정불변의 형태와 색채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적인 조건이나 주관적 조건에 의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생각했다. 하나의 동일한 풍경을 늘 우리가 보더라도 그 풍경이 똑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감수성이 민감한 사람이라면 하나의 풍경이라도 경우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울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낀다.

여기 인상파 화가가 화구를 들고 아침에 엷게 안개 낀 강변을 걷고 있다. 그는 강물의 흐름과 강가를 끼고 아름답게 펼쳐진 숲과 이를 감싸고 있는 엷은 안개와 맑은 아침의 기운을 화폭에 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침의 독특한 강변 풍경이었기 때문에 그는 아침의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빠르게 붓을 움직여야만 한다. 낮이 되면 아침에 보았던 그 독특한 풍경의 인상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처음 느낀 그 생생한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감흥이 살아 있는 시간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필촉은 매우 속도감 있고 경쾌하며 사물의 세부보다는 그 전체 인상을 중요시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모네의 <인상-일출>(캔버스에 유화,50x65cm,1872)은 인상주의 미술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1874년에 사진사 나다르의 제작실에서 열렸던 젊은 화가들의 전시회에 출품된 그림 중 하나다. 어떤 비평가가 이 그림의 제목을 보고 이들 화가를 ‘인상주의자들’이라고 경멸하며 불렀는데, 이 말은 곧 이들 새로운 경향의 화가들을 지칭하는 공식 명칭이 됐다. 인상주의 화가들 스스로 이 명칭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인상-일출>은 새벽 항구에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포착한 그림이다. 해가 뜨는 동안의 짧은 시간에 그린 것이라, 필촉이 빠르고 다소 거칠며 즉흥적인 감흥으로 진동하고 있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대기 속에서 몇 척의 작은 배가 움직이고 있고, 그 뒤로는 큰 범선들이 희미하게 형체가 뭉개진 채 그려져 있다. 앞에 있는 작은 배조차 몇 번의 붓질로 간략하게 형태가 드러나 있다. 사물에 대한 자세하고 입체적인 묘사나 치밀하고 매끄러운 완성도 등은 이 그림에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전통적인 화풍의 입장에서 볼 때, 모네의 <인상-일출>은 거칠게 제멋대로 그려진 미완성의 졸작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 그림은 발표 당시 엄청난 비난과 경멸을 감수해야 했다.

이 그림은 가까이에서 보면 거칠고 빠른 붓터치에 의한 물감의 흔적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거친 붓터치에 의한 흔적은 자연스럽게 화면 속에 녹아들 듯 섞이고 새벽 항구의 정경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새벽은 빛으로 대지를 감싸안는 새로운 출발의 신호이며, 항구는 희망에 찬 항해를 시작하기 위한 배들의 정박지이다. 인상주의 미술의 눈부신 광명을 예고하는 주제와 화법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온갖 비난을 물리치고 모네의 혁명적 화법에 승리의 손을 들어줬던 것이다.

새해에 첫 명화로 이 그림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 대학이 새해를 맞이해 온 세상에 진리를 밝히는 빛을 높이 들고 어려움을 극복해 새로운 도약을 이루자는 뜻에 있다.

임두빈(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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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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