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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당신에게 웃음을 배달합니다

기사승인 [1431호]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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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C딩동 허용운(38) 씨

Prologue

유재석이 없는 무한도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TV 프로그램을 이끄는 MC는 방송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이 마이크를 드는 순간, 곧바로 녹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방송에는 보이지 않지만 원활한 방송을 위해 카메라가 꺼진 순간에도 마이크를 드는 사람이 있다. 사전MC의 길을 개척하며 ‘사전MC계의 유재석’이라는 수식어까지 얻게 된 MC딩동 허용운(38) 씨가 그 주인공. 별을 빛내주기 위한 밤하늘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그를 지난달 29일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 대기실에서 만났다.

▲ 방송 진행 중인 MC딩동

▶ 사전MC에 대해 설명해 달라.

방송에 나오지 않는 MC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방청객이 있는 녹화방송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방청객들에게 주의사항 등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 별명이 ‘사전MC계의 유재석’이다. 그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는 말로 들린다.

보통 사전MC는 주의사항이나 안내사항을 녹화가 시작하기 전에 전달하고 바로 가버린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남아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방송 녹화가 끊기는 틈이 생기면 구원투수처럼 곧바로 달려가 재미난 이벤트를 선보였다. 장미꽃 이벤트나 경품 이벤트를 준비해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무대를 꾸민 것이다. 녹화가 끝난 뒤 관객들을 배웅하고 나서야 나의 하루도 비로소 끝이 났다. 그 노력이 결실을 본 것 같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대기실도 차도 없었다. 어느 날 녹화가 끝나고 버스를 타려는데 방청을 했던 커플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말을 걸더라. “재미있게 진행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교통비를 건네주던 그날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 그 커플의 결혼식 사회와 돌잔치 사회를 봐주며 고마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 워너원과 MC딩동

▶ 어렸을 때부터 꿈이 MC였다고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성인이 되고 우연히 집에서 10년 전에 썼던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 표지에 ‘MC라는 직업은 나의 천직이다’라고 써놨더라.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고 누군가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전달하는 것이 좋았다. 곰곰이 따져보니 그게 MC가 하는 일이었다. 그때 영감을 받아 제대로 꿈을 키워보자는 생각에 집을 나와 무작정 서울로 갔다.

 

▶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시작한 서울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대학로에 있는 고시원에서 2년 6개월을 살았다. 가장 싼 방이라 창문이 없고 방 가운데 기둥도 있었다. 대학로 극단에서 활동했지만 수입이 많지 않았다. 연봉은 60만 원 정도였고 그 이하일 때도 많았다. 걱정돼서 전화하신 어머니께 “대학로에서 사람들 재밌게 해주고 있어”라고 하니 “사람들처럼 엄마도 재미있게 해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며 용돈을 보내주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 대학로에서 쌓은 경험으로 ‘SBS 공채 개그맨 9기 대상’을 타며 방송계에 등장했다. MC의 꿈 대신 개그맨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MC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 봤는데 당시 대한민국 MC들이 전부 개그맨 출신이었다. 그 계보를 이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개그맨에 도전했다. 대상을 타면 창창한 앞길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프로그램이 바로 폐지돼 힘든 시간을 보냈다.

 

▶ 일자리를 잃었는데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지 않았나.

개그맨은 대부분 프리랜서이기에 일자리를 잃어도 내가 설 곳을 잃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고민도 했다. 그러나 ‘잘 될 거야, 잘 되겠지’라며 되뇌었다. 고민은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늘어난다. 그래서 그냥 계속 노력하는 나 자신을 믿어 보기로 했다.

 

▶ 그러한 믿음 덕분인지 ‘윤도현의 러브레터’ 사전MC를 맡게 됐다. 결정적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다면.

원래는 개그맨으로 성공해서 예능이나 버라이어티에 나오는 국민MC가 목표였다. 그러나 계획은 무산됐고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굳이 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할 수 있다면 뭐든 좋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음악방송 사전MC 자리가 공석이 나서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는데, 오자마자 몇 주 뒤에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니 기회를 잡은 것 같다.

 

▶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가장 큰 원동력은 억울함이었다. 청춘을 다 바쳤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또, 지금 도망친다면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도 계속 도망칠 것 같았다. 나는 날고 싶었고, 내 어깨에 날개가 있다고 믿었다. 떨어져도 좋으니 날고 싶었다. 이런 생각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난해 ‘해피컴퍼니’라는 MC 양성 회사를 설립했다. 창업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를 만들고 처음 입사한 ‘MC배’는 8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인재였다. 이 친구가 나를 찾아오더니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기회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기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성장했던 나는 나만의 노하우를 알려주고 동반자로서 꿈을 키워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아카데미를 운영하지만 돈은 받지 않는다. 영리나 이윤추구가 아니라 꿈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TV에 나오는 사람들만 MC가 아니라 TV 밖에도 훌륭한 MC가 많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최종적으로는 ‘사전MC 시상식’을 열고 싶다. 결혼식 부분 최우수 MC, 돌잔치 부분 최우수 MC 같은 것 말이다. 이를 통해 MC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노란색이다. 노란색은 다른 색과도 비교적 잘 어울리는 색 같다. 도화지의 밑바탕 같다고 해야 하나. 어떤 색을 입혀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나의 직업과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접할 20대 청춘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그러나 20대는 그런 제약이 없는 시기이다. 한 번뿐인 20대 인생이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을 해봤으면 좋겠다. 결과는 되거나, 안 되거나 반반이지 않은가. 떠올리기만 하면 잠이 안 오고 설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Epilogue

그가 MC라는 꿈을 향해 나아갔듯 기자는 본래 작가라는 꿈을 위해 노력했다. 노트와 연필만 있다면 하늘에서 해가 뜨는 줄도 모르고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입시와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혀 언제부턴가 펜을 놓았고, 그렇게 꿈에서 도망치듯 벗어났다.

그가 말했다. 가슴이 설레는 일을 하고 사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아느냐고. 도망치면 앞으로의 시련들 앞에 또다시 도망치고 말 것이라고. 더 이상 도망치며 살기에는 내 꿈이 여전히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 순간이었다.

▲ SNL 사전 진행을 하고 있는 MC딩동

임수민 기자 sumin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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