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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헝가리 건국과 아시아적 전통

기사승인 [1430호]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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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랜드 마크인 영웅광장 중심에는 가브리엘 천사상 아래 말을 타고 있는 아르파드와 여섯 부족장의 동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아시아의 유목 민족이었던 머저르족을 유럽으로 이끈 지도자들이다. 아르파드는 투룰 신화에 등장하는 알모시의 아들이다. 헝가리 왕국은 유럽 속의 아시아 국가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헝가리의 아시아적 문화 전통은 주변 국가들에게 이질적이며 야만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고 내부적으로도 사회 통합과 발전에 장애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헝가리 왕국의 초대왕인 이슈트반 1세가 정통성을 얻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아시아적 전통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이슈트반은 아르파드 가문의 계승자 게제 대공의 아들이었다. 계승 서열 1위였던 이슈트반은 부친이 사망했는데도 대공으로 즉위를 하지 못했다. 바로 유목민들의 형사취수(兄死娶嫂)라는 관습 때문이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하는 형사취수는 부여나 고구려에도 있었다. 원래 형사취수는 유목 사회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였다. 몇몇 유럽 국가들도 형사취수가 존재했었지만 557년 파리공의회에서 형사취수를 근친상간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로만 카톨릭 국가에서는 사라진 관습이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머저르족에게 형사취수는 하나의 전통이었다.

 

게제 대공이 997년 사망하자 이슈트반의 삼촌인 꼼빠니가 형수이자 이슈트반의 어머니인 셔롤터와 결혼을 하였다. 이 결혼은 계승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대공 비와 결혼한 꼼빠니는 자신이 바로 대공 계승자라고 주장하면서 군사를 일으켜 이슈트반을 공격하였다. 이슈트반은 반란군의 공격에 밀리면서 계승권을 상실할 위기에 빠졌다. 이 때 아내인 기젤라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기젤라는 바이에른의 공작 하인리히 2세의 공주였기 때문에 강력한 독일 기사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슈트반 군대는 기젤라 시종 기사단과 함께 베스프렘 부근에서 콤빠니의 반란군을 격파하였다. 이 때문에 베스프렘은 ‘여왕의 도시’라는 호칭을 얻었다.

대공이 된 이슈트반은 로만 카톨릭을 받아들이고 머저르족을 통합하여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였다. 교황 실베스트로 2세는 1000년 12월 25일 ‘성스러운 왕관’을 이슈트반에게 하사하여 헝가리왕국을 공인하였다. 기울어진 십자가가 독특하게 장식된 ‘성스러운 왕관’은 헝가리 국보로 현재 오르삭하즈(국회의사상) 중앙에 보관되어 있다.

 

이슈트반 1세는 교권 강화와 사유재산 보호에 관한 법령을 제정하고 중앙과 지방의 행정 구역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 이 때 정비된 행정구역이 현재 헝가리 행정구역의 근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렇듯 이슈트반 1세는 현재의 헝가리 기틀을 마련한 건국왕이었다. 하지만 머저르족의 아시아적 전통을 배격하고 로만 카톨릭과 서부유럽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정책은 내부적인 갈등을 키웠다.

장두식(일반대학원) 초빙교수 dkdds@dankook.ac.kr

<저작권자 © 단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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