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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사랑할 용기

기사승인 [1429호]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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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길 기자

태양과 정수리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지난 23일 오후 1시. 뜨거운 햇볕 아래 신학사구조개편을 반대하는 일인시위가 범정관 앞에서 있었다. 고독한 싸움이다. 6월 21일에 대학본부가 개편안을 발표했을 당시 조용했던 학내는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 학생들은 놀라울 만큼 차분하다. 학교를 방심시키기 위한 고도의 심리 전략일까. 이번 개강호를 취재하며 느낀 바로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단지 무관심일 뿐이다.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관심은 애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기자 본인도 특별한 계기가 없었더라면 개편안의 내용보다 서브웨이 샌드위치 속 어떤 소스가 조화로울지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사람은 사소한 것에 더 애정을 갖는다. 사소한 것들은 애정을 갖기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사소하지 않은 것에 사람들은 쉽사리 애정을 갖지 못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하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사랑하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들에 종종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사소한 것에 애정을 갖고 사소하지 않은 것에는 무관심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실 사소하지 않은 것들에 무관심하면 정신건강에 이롭다. 억울하게 해고됐다며 소리치는 노동자들의 외침도, 한밤중에 아무 이유 없이 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당해도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된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해고 노동자의 억울함,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뭘’ 하고 하던 일이나 이어 한다면 노동자와 여성의 권리 보장을 주장하며 얼굴 붉히는 친구보다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관계를 맺는 존재다. 세상에는 완벽하게 남의 일이란 없다. 해고 노동자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 당신 아버지의 눈물일 수도 있다. 살해당한 여성이 당신의 엄마나 누나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번에 진행되는 학사개편에 포함된 학과들은 2년 전 학사개편 땐 포함되지 않았다. 지금 학사개편의 부당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의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냉혈한 사람이더라도 해고 노동자의 억울함과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는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사랑할 용기를 내야 한다. 역사적으로 인내는 비겁자의 핑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신을 비겁하게 만드는 현실 탓만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는 달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의를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길을 가다 남의 일에 가슴 찌릿함을 느낀다면 관심을 가져주자. 가슴이 찌릿한 이상 그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일이 된 것이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관심과 애정을 마구 쏟아주자. 그래도 샌드위치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멋진 일이지 않은가.

 

김한길 기자 onlyoneway@dankook.ac.kr

<저작권자 © 단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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