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70주년 기념 국토대장정 - 청춘의 한 자락에 역사의 발길을 남기다
개교 70주년 기념 국토대장정 - 청춘의 한 자락에 역사의 발길을 남기다
  • 양민석·김한길 기자
  • 승인 2017.08.29 12:27
  • 호수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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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의 굳은살처럼 두꺼워진 우리의 잊지 못할 추억
▲ 국토대장정단의 출정식 모습

■ Prologue

지난 여름방학(7월 6일~14일, 8박 9일) 동안 ‘개교 70주년 기념 국토대장정단(이하 국토대장정단)’이 도보여행을 떠났다. 국토대장정단은 천안캠퍼스에서 합동 출정식을 가진 후 죽전캠퍼스(파주-고양-서울-용인-안성-천안, 총 193km)와 천안캠퍼스(김천-영동-옥천-대전-청주-천안, 총 200km) 두 팀으로 나뉘어 9일간의 여정 끝에 최종목적지인 독립기념관에서 만나 행진을 마무리했다.

 

이번 국토대장정은 개교 70주년을 맞아 우리 대학 설립이념인 ‘민족사학’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 역사적 의미가 담긴 장소를 도보로 탐방하며, 중간 중간 한시준 동양학연구원 원장, 박성순(교양대학) 교수 등이 강연자로 나서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은 경술국치(1910년)로 국권이 피탈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전국을 누비는 독립운동가의 삶을 선택했다. 국토대장정단은 그가 걸었던 ‘독립운동의 길’과 함께 생생한 한국 전쟁의 기록이 담긴 ‘통일의 길’을 걸으며 애국정신을 몸소 경험해봤다. 참가자 총 140명 가운데 1명의 낙오도 없이 행진을 무사히 마친 그들이 어떤 희로애락의 이야기를 남겼을지 그 발길을 따라가 봤다.

 

■ 역사를 향한 신발 끈을 매다

설렘 가운데 진지함이 엿보이는 국토대장정단이 출사표를 던졌다. 대원들이 방학 계획으로 낭만적인 여행 대신 고생이 예견되는 국토대장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주희(국악·4) 씨는 “버킷리스트에 적은 꿈, 국토대장정을 떠나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라며 굳은 결의를 내보인다.

 

■ 손에 닿을 것 같은 겨레의 땅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최북단에 위치한 도라전망대. 울창한 수풀이 펼쳐진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 사이로 남북한이 서로의 등을 맞대고 있다. 개성시 변두리와 북한군 초소가 맨눈으로도 뚜렷하게 보인다. 대원들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겨레의 땅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제3땅굴에서는 북한군의 땅굴 건설로 인해 생긴 폭파 흔적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선명하다. 어두컴컴한 지하 갱도로 조심스레 들어가니 퀴퀴한 공기가 엄습한다. 김민석(철학·1) 씨는 “참담한 전쟁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나니 아직 끝나지 않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처연한 목소리로 답한다.

 

잠깐의 휴식 뒤에 대원들은 “통일을 걷는다. 아자, 아자, 파이팅!”이라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행진의 출발선을 나란히 밟는다. 태극기를 든 대원이 선두로 나서자 그 뒤를 1~7조의 대원들이 따라붙는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김태호(건축·1) 씨는 “무엇이든 처음 도전하는 일은 설렌다”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내비친다.
 

▲ 국토대장정단이 행진을 하고 있다.

■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껴 우중충한 날씨지만, 행진하는 대원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두치와 뿌꾸’의 리듬에 몸을 맡겼던 체조 시간의 흥이 활기찬 아침의 원동력이 된 것일까. 심지어 어젯밤 주차장 바닥에서 텐트를 치고 잠들었는데도 피곤한 기색조차 없다. 유상욱(행정·3) 씨는 “일찍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기분이 상쾌하다”고 웃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내내 한껏 비를 머금고 있던 먹구름이 기어이 비를 쏟아내고 만다. 세차게 내리는 비 탓에 도로가 미끄러워 행진은 3시간이나 지체되고, 부상자도 4명이나 발생했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마친 응급 스태프는 “발이 괜찮아질 때까지 걸으면 안 된다. 빨리 나아서 국토대장정을 무사히 마치길 바란다”며 격려의 말을 건넨다. 발목을 다친 김세영(응용통계·2) 씨는 “나 때문에 일정이 지체된 것 같아 미안하다”며 “심각한 부상은 아니니 곧 회복될 것이다. 반드시 조원들과 함께해낼 것”이라며 완주를 향한 용기를 내비친다.

 

■ 독립운동가의 숨결을 따라서

국토대장정단은 장정 3일차 한국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했다. 좁은 독방에서 옥살이를 체험해보니 독립운동가의 열악한 감옥 생활이 조금이나마 실감이 난다. 감옥의 벽 한 편엔 독립운동가가 사형 전날 밤에 남긴 낙서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엄마, 오늘 밤에 꼭 나타나 주세요.’ 그의 애통한 울부짖음이 생생히 귓가로 전해지는 듯하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경목 관장은 “국토대장정 기간만큼은 전국 각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의 숨결을 느껴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국토대장정단이 향한 곳은 우당기념관. 우당기념사업회 황원섭 상임이사는 “우당 이회영 선생과 범정 장형 선생은 신민회와 신흥무관학교에서 서로의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이는 한국 무장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됐다”며 “국내 유일의 민족사학을 설립한 범정 장형 선생의 계보를 잇는 대원들을 응원한다”고 말한다.

 

■ 두 팔 벌려 민족의 얼을 기리다

장정 4일차 탑골공원에서 3·1운동 만세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바로 오늘이 3·1운동 이후 98년 만에 최초로 만세운동 시위가 재현된 날이다. 대원들은 기미 독립선언서 전문이 새겨진 연단 앞에 모여 양손에 태극기를 쥔 채 진지한 표정으로 퍼포먼스에 임한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던 약 200만 명의 국민의 우렁찬 함성이 대원들의 마음속에 다시 불타올라 멈춰있던 역사의 현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하다.

 

죽전캠퍼스 구예지(국어국문·4) 총학생회장과 이한결(전자전기공·4) 총학생부회장은 기미 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 대원들은 종로 거리에서 만세 삼창을 하며 서울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태극기와 3·1운동 기념 배지를 나눠준다. 유재희(무역·3) 씨는 “역사의 장벽을 넘어 일본인에게 태극기와 배지를 전달하는 의외의 장면이 펼쳐졌다”며 뿌듯함을 드러낸다.

 

■ 고생 끝에 무르익는 완주의 꿈

장정 8일차 행진을 마친 모든 대원이 천안캠퍼스 체육관에서 모여 휴식시간을 만끽한다. 대원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잠을 청하거나 두 다리를 안은 자세로 깊은 생각에 빠져 먼 곳을 바라본다. 한편 체육관 창문 밖을 보니 키 작은 나무에 대원들의 빨래걸이가 아무렇게나 걸려있다. 꼬깃꼬깃하게 마른 옷가지들은 지난 7일 동안 쌓인 대원들의 고생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저녁 식사 시간에 대원들은 식판을 들고 각자의 배식 순서를 기다리는데 기자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원들 가운데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다리를 절고 있었다. 기자가 걱정하는 마음에 대원들에게 괜찮냐고 묻자 정희윤(국어국문·4) 씨는 “온몸에 성한 곳 하나 없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준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건강한 마음씨를 드러낸다.

 

저녁 식사 이후 죽전캠퍼스 학생팀과 D- Voice에서 준비한 깜짝 이벤트, 부모님의 영상편지 시청 행사가 진행됐다. 조은산(무역·2) 씨는 “부모님이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촬영 작업에 참여한 것에 감사하다. 그 따뜻한 사랑 덕분에 힘이 솟는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벅찬 감동을 내비친다.
 

양민석·김한길 기자
양민석·김한길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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